기아자동차의 레토나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생산된 국산 SUV로, 특히 군용 지프 차량 기반으로 만들어져 군 복무를 경험한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차입니다. 전역 후에도 한 번쯤 다시 마주치면 반가움을 느낄 정도로, 레토나는 병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당시 국산 SUV 산업의 일면을 잘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군대와 함께한 레토나의 흔적, 그 개발 배경, 그리고 당시 기아자동차 SUV 산업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겠습니다.
군대의 실질적 파트너였던 레토나
레토나는 단순한 민수용 SUV가 아닙니다. 그 시작은 군용 차량에서 출발합니다. 기아자동차는 국방부 납품을 위한 군용 차량, 이른바 ‘K-131’로 불리는 군용 지프를 제작해 왔습니다. 이 차량을 바탕으로 민간용 모델로 재탄생시킨 것이 바로 레토나였습니다. 그 덕분에 병사들은 군 복무 중 정비, 운전, 탑승 등 다양한 상황에서 레토나와 같은 구조의 차량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한 이들 중 상당수가 이 차량에 익숙했으며, 전역 후에도 ‘레토나’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 독특한 외형과 승차감을 기억해 냅니다.
군용 기반 차량답게 레토나는 4륜 구동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험지 주행에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산악지형, 흙길, 눈길 등에서 탁월한 주행 성능을 보였고, 이는 민수용에서도 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민수용 차량으로서는 불편한 요소도 많았습니다. 예컨대 소음, 진동, 딱딱한 서스펜션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SUV 선택지에서 이 차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군대와 민간을 오가며 레토나는 병영문화에 스며들었고, 이는 남성 소비자에게 친숙함과 향수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병영문화 속 레토나의 존재감
레토나는 군대 내에서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운전병은 물론, 보급계, 정비병 등 다양한 병과에서 이 차량과의 접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훈련지 이동, 물자 수송, 장교 이동 등 주요한 군 내 임무에서 자주 등장하며 병사들에게 익숙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운전병들 사이에서는 레토나 운전 스킬이 하나의 숙련도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좁은 산악도로, 후진 주차, 돌발상황 대처 등에서 차량을 다루는 기술이 요구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제대 후 민간에서 운전 경험을 이어가는 이들 사이에서도 ‘군대에서 레토나 몰았던 경험’은 자연스러운 무용담으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또한, 레토나는 ‘지프차’라는 별명으로 통용되며, 병사들 사이에서 소위 ‘간지 나는 차’로도 불렸습니다. 일반 차량보다 높은 차체와 험지 주행 능력, 그리고 독특한 오픈탑 스타일(일부 모델) 덕분에 미군의 험비와 비슷한 외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차량은 군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수송 수단’으로 인식됐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혹한기 훈련, 여름 유격훈련, 전술 이동 등의 상황에서도 고장이 적고,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했기에 병사들은 레토나를 일종의 ‘전우’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기아 SUV 산업과 레토나의 위상
레토나는 기아자동차가 본격적으로 SUV 시장에 진입하는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기아차는 국내외 경기 불황 속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군용 노하우를 접목한 SUV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레토나는 1998년 첫 출시 후 중형 SUV 시장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당시 경쟁 모델로는 현대 갤로퍼, 쌍용 코란도 등이 있었지만, 레토나는 그중에서도 가격 대비 성능과 험지 주행 특화라는 차별점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됐습니다.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군용차 기반 SUV’라는 정체성을 더욱 부각해 줬습니다.
레토나는 이후 2003년까지 꾸준히 생산되며, 국내 SUV의 하나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후 후속 모델 없이 단종되긴 했지만, 레토나가 보여준 기아의 시도는 이후 스포티지, 모하비 등으로 이어지는 SUV 라인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중고차 시장이나 클래식카 커뮤니티에서는 레토나를 찾는 수요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자동차가 아닌, 하나의 기억과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아자동차 레토나는 단순한 차량이 아닌, 병영문화와 한 시대를 함께한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군 생활의 일상에서 접했던 이 차량은 전역 후에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으며, 기아 SUV 역사의 출발점으로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단종 이후에도 레토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단순한 향수가 아닌, 그 독특한 정체성과 경험 덕분일 것입니다. 기아 레토나는 우리 SUV 산업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모델입니다.